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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난임일기의 시작

2015년 9월 7일에 공식적인 연애가 시작되었고, 

2019년 9월 8일에 공식적인 부부가 되었다.

 

결혼 1년 차인 2019년은 결혼식만 올렸지 연애시절과 똑같았다. 

오빠가 갑자기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났기에 3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다는 주말부부를 나는 결혼하자마자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빠는 주말마다 우리집에 왔고 일요일 저녁 헤어질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며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기 바쁜 2019년이었다. 매주 헤어지는게 너무 아쉬웠던 우리는 혼인신고를 했고, 내가 지역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결혼 2년차인 2020년 우리는 드디어 같이 살게 되었고, 거기엔 코로나도 함께였다.

2020년 상반기에 살았던 모든 이들이 그랬듯 나도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모든 것들이 낯설고 무서웠다. 오빠 말고는 아무도 없는 낯선 지역, 낯선 환경 속에 오빠만 있으면 되었기에 괜찮았다. 

전세지만 첫 신혼집을 우리 취향으로 꾸미고 우리의 색깔로 아늑하게 채워나갔다. 우리만의 공간이 좋았고, 오빠와 함께 낯선 동네를 우리 동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좋았다. 평일 퇴근 후 함께하는 동네 탐험, 금요일 저녁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거기에 어울리는 술을 마시며 함께 예능을 보는 시간도, 주말에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캠핑을 하는 것도 오빠랑 함께라서 좋았다. 

 

결혼 3년차인 2021년은 고민도 많았고, 슬프고 아팠다.

새로운 지역, 코로나도 점점 일상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주어진 일상 속에서 우리는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고 투닥투닥거리며 우리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눴다.

"오빠는 애기가 있었으면 좋겠어? 이유가 뭐야?"라는 질문을 수백 번 했고, 오빠는 거기에 대해 수백 번 대답했다. 우리로 인해 태어난 한 사람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기에 오빠에게 확신을 받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아기를 낳아야하는 이유에 대한 정답을 찾지 못했지만, 당시 일에서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준비나 해볼까?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임신 전 건강검진을 해보았다. 풍진 항체가 약하게 있어서 풍진 주사를 맞고 코로나 백신 1차, 2차를 맞고 나니 하반기가 되었다. 백신과 주사에서 자유로워지고 난 후부터는 어플로 배란일을 체크해 나가며 숙제를 했다. 

12월 생각지도 못했던 갑작스럽고도 큰 아픔을 경험하게 되었다. 오빠랑 둘이 편하고 자유롭게 지내는 시간도 좋지만, 우리 둘 사이에 소중한 존재가 있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4년차인 2022년은 많이 싸웠고, 난임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영양제도 챙겨먹고 숙제도 나름 열심히 했다. 한 달의 반은 기대감으로, 나머지 반은 실망감으로 가득했다. 점점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고 어플 배란일 체크 다음 단계인 배란 테스트기를 주문했다. 뭔가 모를 짜증에 배란 테스트기 만큼은 내가 주문하기 싫어서 오빠한테 주문하라고 했다. 피크를 찍는 날 숙제를 해야 하는데 이 숙제를 위한 숙제를 해야 하는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평소에는 잘 지내다가 피크를 확인하는 순간부터 우울해지고 싸우게 되고, 울고 짜증은 나지만 숙제는 해야겠고.. 이렇게 5개월이 지났다.  

9월, 우리는 난임병원에 가보기로 결정했다. 같이 방문해서 상담도 하고 검사도 했다. 정말 하기 싫었던 나팔관 조형술도 했다. 고통의 역치가 높은 사람인데 나팔관 조형술은 내가 받았던 검사 중에서 최고였다. 아프기도 했지만, 그냥 아프다기보다는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고통이었다. 검사결과 정자의 활동성이 떨어지는 것 외에 별다른 문제는 없다고 했다. 오빠는 정자의 활동성에 좋은 음식들을 매일 챙겨 먹고, 나는 매달 병원에 가서 초음파 촬영을 하고, 과배란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병원에서 숙제 날짜를 받아오고, 생리를 하는 반복되는 생활을 했다. 

 

결혼 5년차인 2023년인 지금, 오답이 없는 오답노트를 적고 있다.

1월, 우리는 결국 인공수정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처음 겪어보는 기분이어서 그런지 지금도 그날의 분위기와 감정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너무 긴장되고, 떨렸던 그날. 1차에 성공하면 로또 1등 확률이라고 했지만, 정자 수치가 좋지 않다며 기대하지 말라는 말도 시술 전에 들었지만, 기대를 했다. 주기가 나름 정확했던 나는 생리날짜가 미뤄질수록 점점 더 기대를 하게 되었지만, 생리가 터진 그날. 정말 눈물이 계속 났다. 병원에 생리가 시작했다고 연락을 하고 1차 인공수정 시술은 이렇게 종료했다. 매달 갔던 병원도 한동안 가지 않았다.

그리고 휴직을 했다. 휴직을 하면 마음이 편해져서 다들 금방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병원은 가지 않았다. 배태기도 써보고 나름 열심히 숙제를 했는데 안 생겼다. 마음을 편하게 먹는 건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다시 병원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병원을 옮겼다. 오빠는 정자검사를 새로 했고 결과는 모두 정상. 2차 인공수정을 했다. 결과는 실패. 원인을 모르고 이유를 모르니까 너무 답답했다. 바로 3차 인공수정을 준비해 보기로 했다.

 

엄마는 내가 원하면 바로 될 줄 알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원하면 내 계획한 대로 내 노력대로 할 수 있었다.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으면, 지난 과정을 돌아보면서 실패한 이유를 찾아보고, 조금씩 보완해나가다 보면 결국에는 원하는 것에 가까워졌다.

사실 엄마가 되는 것을 엄청 간절하게 원했던건 아니다. 아직도 아이를 낳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꼭 맞는 정답은 찾지 못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언제 끝날 줄 모르는 여정이 계속될 줄은 몰랐다. 남들은 다 쉽게 되는 것 같은데.. 우리는 왜 어려운 걸까? 원인이라도 알면 좋을 텐데, 이유를 모르니까 더 답답한 과정들이다. 오답노트를 만들고 싶은데, 뭐가 틀렸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너무 답답하다.

 

이 답답한 마음들을 글로 적어보면 조금은 해소되지 않을까 해서 기록해보기로 한다. 나중에 이 글을 봤을 때 그땐 그랬지라는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